2017. 9. 9. 20:35ㆍEveryday Projects/# Read 100 books
어떤공부가 필요한가
문학수업으로 3가지 문학을 한다. 평론을 한다. 산다. 이렇게 있다.
문학작품을 분석하며 문학을 배우지만 얻은것은 이데올록요, 잃은 것은 예술이다.
문학 만 하려니까 삶에 대해서 모른다. 일(경험)을 한다. 그러나 세속적인 삶(일만 계속하거나)을 계속 살면 그안에 문학이 들어선 자리가 없다.
따라서 그냥 산다. 가치관을 정립하며 산다.
문학적
창작적
작가적 가치관 정립
문학적, 창작적, 작가적에 나를 더한다.
이는 문학관, 창작관, 작가관이 된다.
죽은 고래는 아무리 커도 물살이 흐르는 대로 흐르지만 송사리는 아무리 작아도 물살을 거슬러서 오를 줄 안다
글을 쓰면서 창작방법의 한계를 끝없이 극복해가는것, 문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사는것.
인식의 도구들
태도 및 사유가 시대에 따라 달랐다.
드라마의 착한 며느리와 명랑한 며느리가 있는데 이성적으로는 착한며느리하 좋지하지만 마음이 가는것은 명랑한 며느리 였다.
착하다고, 논리적이라고, 아름답다고 호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론적으로 맞다고 훌륭한 건물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호감을 결정짓는것은 다양하다.
진선미가 있으면 다른 순위였다. 이성과 논리가 중요한 시대는 진이 우선시되는 시대였으며 중세시대는 선이 우선시되는 시대였다. 아마 현재는 문화, 감수성, 등(아마 미? 감각) 이 우선시 되는 시대 하지만 이것이 인식의 도구이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이성이 중요한 미국에서는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철저히 금전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맞고,
감성이 중요한 지금 시대에서 따듯한 힐링, 위로가 맞는 답이 아니듯.
존재의 어둠속에서
악의 꽃, 선이 아닌데 옳지 않은데 예쁘다.
자신의 삶을 만물의 척도로 사용한다.
각자의 가치기준을 갖고 세상을 만난다.
하루사리는 태양이 사라지면 몸이 기울어져 균형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작은 빛이라도 발견되는 따라간다. 가까이가면 균형을 잡을수 있을것같아서.
빛에 접근하는데 끝내 균형을 얻지 못하고 타들어간다.
인간도 사랑을 잃고 기울어지면 끊없이 자기균형을 찾아 그 무엇인가를 향해 패대기친다.
그들에게서 쏱야져야 될것만 같은 햇빛이 사라지면 그 무엇인가를 향해서 계속 치닫게 되는 불안한 영혼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있는 생명들은 하나도 동일한 것 없이 생애문제와 부딪치게 되어있다. 이런 연유로 그 어떤 인식의 도구(그어떤 기준)으로도 풀어갈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인간의 삶에는 선이 유죄가되고 악이 무죄가 되는 경우가 수없이 많가. 여기에서 인간의 삶을 다루는 도구로서 문학이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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